합창교향곡이 힙합인 이유

베토벤 9번 4악장은 자기 음악조차 끊고 다시 말하려는 태도에서 뜻밖의 솔직함을 드러냅니다.

게시일 2026-08-17

  • 베토벤
  • 합창교향곡
  • 감상

제가 힙합에서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태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합창교향곡은 힙합음악으로 분류되어도 손색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 지금부터 설득해보겠습니다.

교향곡의 4악장은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환희의 송가가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고, 이 노래의 첫 가사는 "오 벗들이여, 이 소리가 아니오!"라는 외침입니다. 4악장의 시작은 휘몰아치는 인트로와 첼로와 베이스의 장엄한 선율입니다. 그리고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1악장의 선율이 등장하는데 이걸 첼로와 베이스의 선율이 끊으면서 다시 치고 나옵니다. 마치, 이 소리가 아니라는듯이요.

선율이 이어지는 오선을 가위가 끊는 흑백 스케치

마찬가지로 저음 선율이 잦아들면 목관 악기가 2악장의 선율을 연주하는데 곧 첼로와 베이스의 선율이 말을 끊듯이 치고 나옵니다. 이어서 목관악기는 3악장의 선율을 한번더 시도합니다만, 첼로와 베이스의 선율이 노래를 끊으면서 이 소리도 아닌것 같다고 중얼 거립니다. 목관악기는 한번 더 시도합니다. 이때 등장하는 선율이 환희의 송가로 이어지는 멜로디입니다. 이윽고, 첼로와 베이스는 낮은 소리로 환희의 송가 멜로디를 읊조립니다.

위 내용은 제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실제로 베토벤은 1악장과 2악장 그리고 3악장의 선율보다 가장 들려주고 싶어한 선율로 환희의 송가 멜로디를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가사로는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인용하면서도 굳이 "오 벗들이여, 이 소리가 아니오! 대신 더욱 즐겁고 기쁨에 찬 노래를 부릅시다"라는 가사를 직접 추가했습니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베토벤의 위상을 생각하면, 자기 자신의 음악들조차 부정할 수 있는 메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보를 찢는 베토벤의 흑백 스케치

베토벤의 음악은 힙합이 아니지만, 이 순간 베토벤의 태도는 힙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